봉인은 이미 뜯겨 있었다
증거보전(證據保全)이라는 말을 먼저 기억해 주십시오.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누군가 ‘이 투표함에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호소하면, 법원은 그 투표함을 봉인해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묶어 둡니다. 재판에서 열어 볼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만지지 못하도록. 그 봉인지 한 장이 곧 증거의 생명입니다. 봉인이 살아 있어야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말이 성립하니까요.
박주현 변호사는 그렇게 봉인된 투표함을 믿었습니다. 영등포을. 1년이 넘도록 법원의 명령으로 잠들어 있어야 할 상자들이었습니다. 재검표 날, 그는 그 상자가 열리는 순간만 기다렸습니다. 진실은 저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자 앞에 섰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멀쩡한 봉인이 아니었습니다. 봉인은 이미 한 번 뜯겨 있었고, 그 위에 ‘새’ 봉인지가 덧붙어 있었습니다. 법원이 묶어 둔 그 1년 사이에, 누군가 이 상자를 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시 닫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변호사입니다. 봉인이 뜯긴 증거는, 더 이상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증거보전의 의미가 통째로 무너지는 장면 앞에서, 정작 그 자리의 공무원들은 태연했습니다. 박주현은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 ‘봉인지가 교체됐는데도 항의하지 않는 것,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다.’
“봉인지가 교체되었는데 항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 박주현 변호사 (방송) — 영상에서 보기새벽 세 시의 투표함
왜 봉인이 뜯겼는지를 묻기 전에, 한 장면을 먼저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잠든 새벽, 카메라 한 대가 선관위 사무실 안을 비춥니다.
화면 속에서 직원 몇이 투표함의 봉인지를 뜯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가져온 투표지 묶음을, 그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박주현은 그 영상을 들어 보이며 말합니다. ‘선관위 직원들이 새벽에 투표함 봉인지를 뜯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투표지를 투입하고 있는 광경입니다.’
선관위는 반박합니다 — 그건 우편으로 정상 배달된 관외 사전투표지라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박주현이 짚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그쪽에도 전혀 없다는 것.’
정상이라는 증거도, 부정이라는 증거도 없는 새벽. 그 새벽의 투표함이, 1년 뒤 법정에서 ‘봉인이 뜯긴 채’ 발견된 그 투표함과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한쪽은 ‘관행’이라 부르고, 한쪽은 ‘조작’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려 줄 유일한 장치 — 봉인은, 이미 거기 없었습니다.
“선관위 직원들이 새벽에 투표함 봉인지를 뜯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투표지를 투입하고 있는 광경입니다. 정상 배달된 투표지라고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 박주현 변호사 (방송) — 영상에서 보기사진이 바뀌어 있었다
증거보전을 하던 날, 그들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변호사도 찍고, 입회인도 찍었습니다. 투표지 한 장 한 장을, 그 상태 그대로. 훗날 ‘이것이 그때 그 표였다’고 말하기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재검표 날, 박주현은 법원이 보관해 온 증거 사진을 봅니다. 그리고 자기 손에 든, 그날 자신이 찍은 사진과 나란히 놓습니다. 같아야 합니다. 같은 표를, 같은 날 찍었으니까요.
그런데 달랐습니다. 그가 찍은 사진과, 법원이 가진 사진이. 같은 투표지인데, 어딘가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을 ‘현격하게 달랐다’고 표현합니다. 증거보전의 마지막 보루였던 사진마저, 법정으로 가는 길 어디선가 모습을 바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봉인은 뜯기고, 사진은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재검표 때 다시 센 그 표들은, 정말 4·15 그날의 표가 맞습니까. 박주현이 매달린 질문은 거창한 음모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습니다 — ‘지금 우리가 세고 있는 이 표가, 그때 그 표가 맞느냐.’ 그 단순한 질문에, 끝내 아무도 ‘그렇다’고 증명해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증거보전 때 찍었던 사진과, 지금 법원에 있는 사진이 다릅니다 — 현격하게 다릅니다.”
▶ 박주현 변호사 (방송) — 영상에서 보기봉인되지 않은 봉투
그래도 길은 남아 있었습니다. 감정(鑑定). 전문가가 투표지와 분류기를 과학적으로 뜯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작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 답이 나옵니다. 박주현은 그 감정에 마지막을 걸었습니다.
감정을 하려면 증거가 ‘봉인된 채’ 와야 합니다. 1장에서 말한 그 이유와 똑같습니다. 봉인이 살아 있어야, 그 증거를 믿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감정 대상이라며 도착한 봉투를 열어 본 순간, 변호사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봉투는 — 봉인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박주현은 ‘여러 변호사가 제일 화가 났던 대목’이라고 회상합니다. 개표장에서 나올 수 없는 형태의 표가 증거랍시고 왔는데, 그것을 담은 봉투조차 봉인이 안 돼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그 안의 표는, 누가 언제 바꿔치기를 해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분류기 감정. 법원은 한때 분류기 프로그램을 감정하라고 결정까지 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감정료’였습니다. 돈. 진실의 마지막 문이, 비용 정산이라는 행정 절차 앞에서 조용히 닫혔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원고의 잘못’이라 했고, 누군가는 ‘닫히도록 설계된 문’이라 했습니다.
“증거보전을 신청하고 감정 대상으로 했는데, 그 봉투가 전혀 봉인이 안 돼 있었습니다. 너무나 절차에서부터 의심이 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변호사들이 제일 화가 났습니다.”
▶ 박주현 변호사 (방송) — 영상에서 보기심판이 선수였다
여기까지 읽고도 ‘우연이 겹쳤을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봉인은 실수로 뜯겼고, 사진은 착오였고, 봉투는 부주의였다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는, 실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권순일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대법관이었습니다. 동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선거를 ‘관리’하는 자리와 그 선거를 ‘심판’하는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축구로 치면, 한 팀의 감독이 동시에 그 경기의 주심을 본 셈입니다.
선거소송은 단심(單審)입니다. 1심도 2심도 없이, 곧장 대법원이 끝을 냅니다. 그러니까 선관위가 치른 선거를, 선관위원장을 겸했던 사람이 속한 바로 그 대법원이 최종 판단합니다. 박주현이 그 구조를 깨달은 순간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대법원과 선관위가 한통속이 돼서,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이래서야 재판을 제대로 하기 어렵겠구나.’
그 옆에는 다른 법정의 다른 변호사, 유승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더 단순하고 더 차가웠습니다. 법은 선거소송을 ‘180일 안에’ 끝내라고 못 박아 두었는데, 대법원은 그 180일을 ‘훈시규정’이라 불렀습니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권고. 그렇게 180일은 1,000일이 됐고, 어느 법정에서는 주심 판사가 사실상 ‘재판을 더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미 다른 한 편에 적어 두었습니다.
심판이 선수를 겸하고, 정해진 시간은 권고로 바뀌고, 재판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운동은 거리에서 외치던 구호를 법정 안으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 그렇다면, 부정선거를 덮는 마지막 손은, 혹시 사법부 자신이 아니냐고.
“대법원하고 선관위가 한통속이 돼서,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하니)… 이래서야 재판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주현 변호사 (방송) — 영상에서 보기그래서, 재판은 끝났다
결말은 짧습니다. 4·15 총선을 둘러싼 선거무효소송 126건은, 단 한 건도 인용되지 않았습니다. 전부 기각·각하. 법원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 위조의 증거도, 조작의 증거도, ‘누가 부정을 저질렀는지’조차 증명되지 않았다.
이 결론은 그대로 기록해야 합니다. 박주현이 ‘봉인이 뜯겼다’고 말할 때, 법원은 ‘관리 과정의 현상일 뿐 위조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가 ‘빳빳한 신권 같은 표’라고 할 때, 감정인은 — 그것도 원고가 추천한 전문가가 포함된 감정에서 — ‘인쇄·보관 과정의 현상’이라 판정했습니다. 한쪽 말만 듣고 결론 내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답변’을 인정하더라도,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봉인은 왜 뜯겨 있었는가. 사진은 왜 달랐는가. 감정 봉투는 왜 열려 있었는가. 분류기 감정은 왜 돈 때문에 멈췄는가. 그리고 — 선거를 관리한 사람과 그것을 심판한 사람이, 왜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는가. 이 질문들에 ‘별일 아니다’라고 답하는 데 익숙해진 사회를, 박주현과 유승수는 ‘무너진 사법부’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사법부가 부정선거에 가담했다’는 판결이 아닙니다. 그런 판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한 변호사가 법정 안에서 본 장면들의 기록이고, 그 장면들이 자꾸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는 고백이며, 끝내 떨치지 못한 의심의 이야기입니다.
심판이 선수였다 — 그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까지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분노가 만든 착시인지. 봉인이 뜯긴 그 상자 앞에 당신이 서 있었다면 무엇을 느꼈을지. 판단은, 늘 그렇듯, 보시는 분의 몫으로 남깁니다.
남는 말
이 이야기의 모든 ‘장면’은 박주현 변호사가 방송에서 직접 밝힌 것이고, 그 영상은 각 장에 링크로 달아 두었습니다. 봉인 훼손·사진 불일치·감정 무산은 그의 주장과 정황이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의 중앙선관위원장 겸직과 ‘180일 훈시규정’ 해석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어느 쪽도 단정하지 않습니다. ‘사법부가 무너졌다’는 강한 말이 정당한지, 아니면 한 사람의 절박함이 만든 과장인지 — 그 사이에서, 사실은 사실대로, 의심은 의심대로 적었습니다.
※ 4·15 선거무효소송은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됐고(부정선거 미인정), 본 글의 ‘봉인·사진·감정’ 관련 서술은 박주현 변호사 측 주장입니다. ‘사법부 관여’는 운동 측의 의심이지 입증된 사실이 아닙니다. 판단은 독자에게.
⚖️ 법적 쟁점 — 봉인은 누구의 의무였고, 법원은 무엇을 할 수 있었나
‘봉인이 뜯겼다’, ‘감정이 무산됐다’ — 단순한 불운인지, 법이 정한 의무의 문제인지. 조문으로 본다.
“법관은 (증거보전) 신청이 있는 때에는 현장에 출장하여 조서를 작성하고 적절한 보관방법을 취하여야 한다.”
법원은 — 증거보전된 투표함은 법관의 책임 아래 보관된다. 박주현 측은 재검표 때 그 봉인이 이미 뜯겨 새 봉인지가 붙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법원·선관위는 관리 과정의 현상일 뿐 위조의 증거는 아니라고 본다.)
쟁점 — 조문은 법관이 ‘적절한 보관방법을 취하여야 한다’고 못 박는다. 보전된 증거의 봉인이 정말 훼손됐다면, 그것은 ‘현상’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 법이 정한 보전의무가 지켜졌는지의 문제라는 것이 비판론의 지적이다.
▶ 출처 — 공직선거법 제228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도 판단할 수 있다.”
법원은 — 선거소송에는 이 ‘직권심리’가 준용된다. 즉 법원은 당사자가 비용을 내지 못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직권으로 분류기·서버를 감정·검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류기 프로그램 감정은 원고가 감정료를 내지 않아 취소됐고, 서버에 대한 전면적 독립 포렌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쟁점 — 당사자주의라면 ‘돈을 안 냈으니 끝’이 맞다. 그러나 선거소송은 공익성이 커, 법은 ‘법원이 직권으로도 밝힐 수 있다’고 정해 두었다. 그 직권을 끝내 쓰지 않은 것이 정당했는가 — 이것이 쟁점이다.
▶ 출처 — 행정소송법 제26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판시사항 [2] 선거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선거에 관한 규정에 위반된 사실’에 관하여 주장·증명하여야 하는 내용 및 정도.”
법원은 — 이 사건이 바로 박주현·민경욱이 다툰 인천 연수을 선거무효소송이고, 대법원은 2022년 7월 28일 이를 기각했다. 그 핵심 법리가 ‘입증책임’이다 — 부정을 주장하는 ‘원고가’ 규정 위반과 그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해야 하며, 증명하지 못하면 진다. 봉인·사진·감정을 둘러싼 의심만으로는 그 증명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쟁점 — 그런데 이 ‘입증책임’ 법리는 4장의 ‘직권심리(행정소송법 §26)’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한쪽은 ‘원고가 증명 못 하면 끝’이라 하고, 다른 한쪽은 ‘법원이 직권으로도 밝힐 수 있다’고 한다. 봉인이 뜯기고 증거가 원고의 손을 떠나 법원·선관위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입증의 부담을 오롯이 원고에게만 지우는 것이 공정한가 — 이것이 ‘포획된 심판’ 논쟁의 법리적 핵심이다.
▶ 출처 — 대법원 2020수30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법은 법원에 ‘직권으로 진실을 밝힐 권한’을 주었고, 법관에게 ‘증거를 지킬 의무’를 지웠다. 그 권한을 쓰지 않고, 그 의무가 지켜졌는지 묻지 않은 것 — 어느 것도 ‘위법’으로 선언되진 않았다. 다만 그것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