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광장
시작은 분노였다. 6월 3일,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동났고, 사람들은 투표를 못 한 채 돌아섰다. 그 분노가 잠실 올림픽공원으로 모였다.
처음엔 황교안, 전한길 같은 ‘부정선거론’의 오랜 목소리들이 앞에 섰다. 그러나 주말마다 사람이 불어 4만 명에 이르자, 광장의 색은 옅어지고 넓어졌다. ‘부정선거’라는 날 선 구호보다 ‘내 표를 돌려달라’는 평범한 참정권의 외침이 광장을 채웠다.
그 순간까지, 광장은 하나였다.
▶ 출처 — MBC — ‘주말 4만 명 모인 이유’둘째 무대
그런데 어느 날, 또 하나의 무대가 섰다. 잠실이 아니라 과천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이었다.
전한길이 거기 올랐다. 김현태 전 707단장과 나란히 무대에 서서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잠실로 모이던 발걸음의 일부가 과천으로 향했다. 누구는 잠실에, 누구는 과천에. 하나였던 흐름이 두 갈래가 되었다.
비판하는 쪽은 물었다. ‘잠실 하나면 자연히 모이는데, 왜 굳이 둘째 무대를 만드는가.’ 옹호하는 쪽은 답했다. ‘시위는 여러 곳에서 할 수 있다. 선관위 앞에서 외치는 게 왜 분열인가.’ 같은 장면을 두고, 한쪽은 ‘분열’을, 한쪽은 ‘확장’을 읽었다.
▶ 출처 — 나무위키 — 투표용지 부족 사태(과천·잠실)‘분탕’이라는 말
광장이 갈리자, 말도 갈렸다. 그리고 양쪽이 똑같은 무기를 들었다 — ‘분탕(分蕩)’. 판을 흐트러뜨리는 자라는 뜻이다.
전한길은 자신을 비판하는 유튜버들을 향해 말했다. ‘동참하되, 그 말이 너무 커져서 갈라치거나 분탕질 돼서는 안 된다.’ 비판은 곧 ‘분탕’이 되었다. 반대로 비판하는 다썰남은 말했다. ‘누가 분탕을 쳤나? 둘째 무대를 만들어 광장을 가른 그쪽 아닌가.’ 전한길도 ‘분탕’, 비판자도 ‘분탕’.
한 단어가 서로를 겨누는 칼이 되는 순간, 토론은 멈춘다. 남는 것은 ‘너는 적이다’라는 선언뿐이다. 미얀마가, 베네수엘라가 잃었던 바로 그 장치가 — 비판을 분열로 부르는 순간 —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동참하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말이 너무 커져서 갈라치거나 분탕질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 한길뉴스 — ‘개입은 부인, 동원은 분명’창당의 그림자
비판하는 쪽이 가장 의심한 것은 광장 너머에 있었다. 전한길이 그리는 ‘다음’이었다.
그는 4월에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현 국힘은 윤석열과 절연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자기 언론 ‘원웨이뉴스’를 세워, 민주당은 물론 국힘 안의 비윤·친한 세력까지 겨냥했다. 결정적으로 그는 말했다 — ‘지방선거가 끝나면 창당하겠다.’
비판하는 쪽은 여기서 그림을 보았다. ‘부정선거’라는 광장의 열기가, 한 사람의 새 정당으로 흘러 들어가는 그림. 광장을 둘로 가른 것도, 국힘과 자유와혁신 사이에 금을 더 깊이 새긴 것도, 결국 자기 세력을 세우기 위한 ‘편가르기’ 아니냐는 것. 좌파가 남녀를, 세대를 갈라 표를 모으듯이.
▶ 출처 — 뉴스1/네이트 — 전한길 ‘지선 후 창당’마주 앉다
6월 25일, 두 진영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비판하는 다썰남과 뉴파수, 옹호하는 전한길과 자영업의모든것. 83분짜리 ‘토론 풀버전’이 그날 올라왔다.
그러나 그 83분의 8할은 ‘부정선거’가 아니었다. ‘누가 6월 6일에 거짓말을 했나’, ‘그 사과는 진짜였나’, ‘채팅창을 누가 욕설로 도배했나’ — 서로를 향한 추궁이었다. 투표용지가 사라진 그 사태는, 정작 그 테이블 위에 거의 오르지 않았다.
토론의 끝에서 전한길은 한 가지 분명한 말을 했다. ‘시민이 주권자다. 국회의원이 대안을 가져오면 우리가 검증한다. 좌우 없이, 부정선거만.’ 비판하는 쪽은 그 말의 진정성을 믿지 못했고, 옹호하는 쪽은 비판을 ‘선동’이라 불렀다. 테이블은 끝내, 평행선이었다.
“(83분 토론 풀버전 — 자영업의모든것 업로드, 6·25)”
▶ 직접 보고 판단하기에필로그 — 누가 광장을 갈랐나
이 이야기에는 정답이 없다. 적어도, 증명된 정답은 없다.
한쪽 답은 이렇다. 전한길이 자기 정치 세력을 세우려고 광장을 갈랐다. 창당 선언, 탈당, 자기 언론, 둘째 무대, 비판자를 ‘분탕’으로 묶는 화법 — 이 모든 관찰 가능한 행적이 그 답을 떠받친다. 원래 한 덩어리였던 사람들 사이에 금을 새겨 자기 편을 만드는 것은, 좌파가 남녀·세대를 갈라 표를 모으는 ‘이간질’과 구조가 닮았다.
다른 쪽 답은 이렇다. 그는 ‘아무도 안 믿지만 부정선거를 위해 누구든 뭉치자’고 했고, ‘지금 후보를 내면 분열되니 오히려 꾹 참는다’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자제하는 쪽이다. 그리고 한 가지 정확히 해둘 것 — 국민의힘과 자유와혁신의 갈등은 그가 만든 ‘없던 판’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던 두 정당의 오랜 금이었다.
그래서 남는 질문은 ‘만들었나’가 아니라 ‘증폭했나’이다. 그리고 ‘증폭했다 해도, 그것이 악의였나 진심이었나’는 — 그의 속마음이라,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 부정선거를 외치던 사람들이 서로를 ‘분탕’이라 부르며 갈라선 그 시간 동안, 투표용지가 사라진 진짜 사건은 광장 밖에서 홀로 식어갔다는 것. 누가 광장을 갈랐는지는 — 여기까지 읽은 당신의 판단에 맡깁니다.
※ ‘자기 세력을 위한 편가르기’와 ‘진심 어린 통합 시도’는 같은 행적에 대한 두 해석이며, 어느 쪽도 ‘의도’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본 글은 공개 발언·보도·영상에 근거해 분열의 ‘경과’를 재구성한 것으로, 특정인을 ‘공작원’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분탕’은 양쪽이 서로에게 쓴 말입니다(→ 갈라치기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