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의 광장
그 밤, 나는 올림픽공원에 있었다. 스물일곱 번째 밤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매일 저녁 그 자리로 모였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손에는 태극기, 입에는 같은 구호.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광장엔 태극기가 가장 많았지만, 드문드문 성조기도 보였다. 한미동맹을 상징한다며 든 사람들이었다. 누구는 그게 자랑스럽다 했고, 누구는 한국 집회에 왜 미국기냐 했다. 그날까지 그건 그냥 생각의 차이였다 —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아닌.
2-3 게이트 쪽에 머리 희끗한 노인 한 분이 서 있었다. 성조기를 들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미국 시민이라 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자기 깃발을 든 한 사람이었다. 그 작은 깃발이 그 밤의 가장 큰 사건이 될 줄은, 그때의 나는 몰랐다.
▶ 출처 — 다음뉴스 — 성조기 ‘내려라 vs 한미동맹’ 논쟁깃발이 내려갔다
소란은 갑자기였다. 누군가 그 노인의 성조기 위로 태극기를 덮었다. 아니, 덮었다기보다 — 가렸다. 성조기가 보이지 않게.
왜 그러느냐고 노인이 물었다. 주변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서 그 깃발 들지 말라’는 말과 ‘왜 못 들게 하느냐’는 말이 부딪쳤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깃발 하나가 다른 깃발에 덮이는 그 장면을 그냥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동작이 오래 눈에 박혔다.
그게 시작이었다. 같은 구호를 외치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 출처 — 스레드 현장 기록 — 2-3 게이트 그날 밤(@stonecold00212)둘러싸였다
곧 노인은 둘러싸였다. ‘당신 누구냐’, ‘대진연 아니냐’, ‘선관위에서 왔냐.’ 질문이 아니라 추궁이었다. 그 광장에선 며칠째, 낯선 얼굴은 곧 ‘적의 첩자’로 의심받곤 했다. 취재하던 기자도, 그저 지나가던 사람도 그렇게 둘러싸여 몸수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나도 들었다.
그리고 손이 올라갔다. 밀치고, 잡아채고. 노인은 맞았다. 나중에 그는 라이브 방송에서 ‘하루에 일고여덟 번, 열 명쯤에게 맞았다’고 했다. 반대편 사람들은 ‘우리도 맞았다, 먼저 시비를 건 건 그쪽’이라 했다.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솔직히 나는 보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고, 너무 빨랐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폭력이 있었다는 것. 같은 깃발 아래 모였다고 믿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 출처 — 파이낸셜뉴스 — 잠실 집회 신고 41건 중 폭행 21건(경찰청, 6/22)끼어든 ‘중재자’
그때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얼굴이었다. 지나가다 들른 듯, 그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누가 그랬냐.’ 그러곤 말했다. ‘저는 누구 편드는 게 아니에요. 들은 이야기를 수습하러 온 거지, 싸우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수습’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소문엔 저쪽이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부러 성조기를 붙였다더라 — 그래서 사람들이 발끈해 떼어낸 거라더라.’ 듣고 있던 노인 쪽이 발끈했다. ‘본인이 결론을 내려놓고 한쪽만 편드는 것 아니냐. 반박하려 하면 삼십 분이라며 막는다.’
‘객관’을 말하던 그 입에서, 정작 한쪽의 ‘소문’만 객관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편을 안 든다는 말이, 어떻게 가장 센 편들기가 되는지.
“누구 편드는 게 아니에요. 저는 들은 이야기를 수습하러 온 거지 싸움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 현장영상(편집본) — 직접 보고 판단하기사라진 이름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열자, 광장보다 더 시끄러운 광장이 거기 있었다. 스레드마다 그 밤의 영상과 사진이 돌았다. 그리고 한 이름이 떠올랐다 — 성조기를 가리고 시비를 걸었다는 그 사람이, 해외에 기반을 둔 계정이라는 말.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계정이 한국 사람인 척했다는 ‘의혹’이었다.
지목당한 쪽은 펄쩍 뛰었다. ‘인신공격이고 모함이다, 나도 그날 맞았다.’ 누가 옳은지 가릴 방법은 없었다. 익명의 게시물뿐이었고, 계정이 어디에 있다는 표시 하나로 ‘외세’라 단정할 수도 없었다. 교포일 수도, 우회접속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 계정이 스스로 사라졌다. 글도, 이름도, 흔적도 지운 채. 누군가는 ‘찔려서 도망친 것’이라 했고, 누군가는 ‘몰매를 맞고 견디다 못해 떠난 것’이라 했다. 사라짐은 — 어느 쪽으로도 증거가 되지 못했다. 다만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끝내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채, 빈자리만 남았다.
▶ 출처 — 스레드 — ‘캄보디아 계정’ 의혹과 반박(미확인, @kktt_98456)에필로그 — 나는 무엇을 보았나
그 밤에 대해,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한쪽 이야기는 이렇다. 그것은 바깥에서 들어온 도발이었다. 하필 미국과 국제 감시단이 한국의 부정선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그 시점에, 누군가 성조기를 끌어내려 집회를 ‘폭력 시위’로 보이게 만들었다. 정체를 감춘 계정이 그 일을 했고, 들키자 사라졌다. 이 그림에서 깃발을 내린 손은 — 부정선거 조사가 그대로 가는 걸 원치 않는 손이다.
다른 쪽 이야기는 이렇다. 그것은 같은 편끼리의 오해였다. 자리와 깃발을 두고 벌어진 흔한 다툼이 격해졌고, 양쪽 모두 다쳤다. ‘외세·캄보디아 계정’이라는 말은 그 혼란 속에서 동지를 적으로 모는, 근거 없는 낙인이었을 뿐이다.
나는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모른다. 그날 거기 있었지만, 정체도 의도도 보지 못했다. 계정이 사라졌다고 죄가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 억울하게 몰린 사람도 도망치듯 계정을 지운다. 양쪽 다 ‘내가 맞았다’ 했고, 양쪽 다 상대를 ‘가짜’라 불렀다.
다만 내가 두 눈으로 본 것 하나는 분명하다. 같은 구호를 외치러 온 사람들이, 깃발 하나를 두고 서로를 때렸다는 것. 그리고 그 소란이 번지는 동안, 정작 그 자리에 모인 이유 — 사라진 표를 누가, 왜 사라지게 했는가 — 그 질문은 광장 한복판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는 것. 그 밤 무엇을 보았는지는, 여기까지 읽은 당신의 판단에 맡긴다.
※ 이 글의 ‘나’는 그날 2-3 게이트를 담은 수많은 현장 영상·스레드 기록을 대신하는 ‘목격자 시점’이며, 사건·발언·정황은 시민 영상·라이브·다수 스레드·언론 보도에 근거합니다. 깃발을 가린 사람과 ‘캄보디아 계정’의 정체·동기는 미확인이고, 본 글은 누구도 ‘외세·프락치·공작원’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폭행은 양측이 서로 피해를 주장하며, 계정 삭제는 혐의의 증거가 아닙니다. — 판단은 독자의 몫입니다.